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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ISSUE
김구 탄생 150주년, 유네스코 기념해를 보내며
  • 황선익 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교수
2026년, 유네스코를 통해 세계인이 백범 김구를 기념하는 한 해가 가고 있다. 여러 학술대회와 함께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열린 부산 벡스코에서는 김구, 그리고 그가 강조한 ‘문화의 힘’을 되새기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여기에서는 ‘김구의 탄생’이 유네스코 기념해로 지정된 경위와 의의를 알아보고, 그가 소망한 ‘문화로 융성한 우리나라’를 생각해본다.
 

유네스코 기념해 지정의 의의
 
‘유네스코 기념해(UNESCO Anniversary)’는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국제적 기념 프로그램으로 인류의 보편적 가치 증진에 기여한 인물의 탄생 또는 서거, 역사적 사건의 기념일을 세계와 함께 기리기 위해 제정되었다. 1957년부터 시작된 유네스코 기념해 사업은 2년마다 회원국의 제안을 바탕으로 주요 기념 대상을 선정하는데, 대체로 50주년, 100주년 또는 그 이상의 의미 있는 기념 연도를 대상으로 이뤄지고 있다. 유네스코는 ‘기념해’ 프로그램을 통해 평화, 교육, 과학, 문화의 의미를 확산하고 있다. 기념해 지정은 유네스코 회원국의 제안과 국제적 지지를 바탕으로 심의를 거쳐 진행되는데, 필요에 따라 유네스코 총회를 통해 공식 지정되기도 한다. 
 
2025년 11월에 열린 제43차 유네스코 총회에서는 ‘김구’를 포함하여, 총 11건이 유네스코 기념해로 지정되었다. 
 
1. 콩구시 여성들의 서거 50주년(1976, 부르키나파소) 
2. 대 아야톨라 사예드 무함마드 바키르 알사드르(Grand Ayatollah Sayyid Muhammed Baqir al-Sadr)의 『귀납의 논리적 기초(Logical Foundations of Induction)』 50주년(1976, 이라크) 
3. 언어학자·문법학자·시인 알무바라드(Al-Mubarrad) 탄생 1,200주년(826, 오만) 
4. 파나마 회의(Panama Congress) 200주년(1826, 파나마)
5. 폴란드 조각가이자 그래픽 예술가 알리나 샤포치니코프(Alina Szapocznikow) 탄생 100주년(1926, 폴란드)
6. 김구(Kim Koo) 탄생 150주년(1876, 대한민국)
7. 사미 미스바 알드루비(Sami Misbah Al-Droubi) 서거 50주년(1976, 시리아아랍공화국)
8. 라비아 발키(Rabia Balkhi) 탄생 1,050주년(976, 타지키스탄)
9. 람바이 왕비(Queen Rambhai)의 유산: 교육, 사회적 지속가능한 발전 및 성평등에 대한 기여 100주년(1926, 태국)
10. 아흐메드 빈 술탄 빈 아흐메드 빈 사이드 빈 술라임 알팔라시(Ahmed bin Sultan bin Ahmed bin Saeed bin Sulayem Al Falasi) 서거 50주년(1976, 아랍에미리트)
11. 아랍에미리트 고등교육 50주년: 아랍에미리트대학교(United Arab Emirates University, UAEU) 설립(1976, 아랍에미리트)
 
기념해 지정에는 회원국들의 지지와 지원이 수반되어야 하는데, ‘김구 기념해’에는 카메룬·중국·코트디부아르·말라위·나미비아·태국·베트남·잠비아의 지원이 있었다. 위 목록에서 알 수 있듯이, 기념해 지정은 교육 분야에 현격한 공로가 있는 인물, 언어학 및 예술 분야 등에서 뚜렷한 성과를 이룬 인물, 인권 신장에 기여한 인물 등이 주로 선정되었다.
 
백범 김구의 탄생이 유네스코 기념해로 지정된 것은 “‘문화의 힘’을 통해 세계평화를 추구한 그의 비전이 유네스코가 지향하는 보편적 가치와 깊이 맞닿아 있다”는 평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유네스코 공식 결정문에는 김구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김구는 한국 독립운동의 핵심적 인물이자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주석[president]이었다. 1945년 이후 그는 군사나 경제의 힘이 아닌 문화 발전을 통해 국가 발전을 이뤄야 한다는 독창적 주장을 했다. 그는 1947년 저서 『나의 소원』에서, 문화의 힘이 행복을 가져오고, 세계평화를 가져온다고 강조했다. 그의 비전은 오늘날 인간적이고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한국을 위한 근본적 메시지로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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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공식 결정문(222 EX/38.INF)
 

김구 기념해로 지정되기까지
 
김구가 한국의 민족지도자를 넘어 국제적 인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데에는 여러 사람의 노력과 협력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의 의지와 적극적인 실행이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협회는 2026년이 “150주년이라는 점에서, 만약 이번에 선정되지 않았다면 향후 50년을 기다려야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이벤트였기에, 사실상 우리 생애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도전했다고 회고했다(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유네스코 Talks』, 2026. 1. 22.). 여기에 한경구 당시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이 호응하고 적극 협력하면서 ‘기념해 지정’이라는 성과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이자 인류학자인 한경구 사무총장은 “김구가 일생 동안 강조한 교육, 문화의 힘, 평화 사상은 유네스코가 지향하는 인류 보편의 가치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고 판단하고 기념해 지정을 추진했다. 이러한 동기와 의지를 바탕으로 유네스코한국위원회와 긴밀히 협력해 준비했고, 그 결과 유네스코 기념해로 지정되는 뜻깊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실제 추진 과정에서는 국내적 정치 상황이나 일본 측의 반대도 우려하여 “조용히 추진했고,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그동안 활동하며 축적한 무형의 자산을 활용”했다고 한다(국가보훈부․광복회, 『백범 김구 탄생 150주년 학술회의 자료집: 백범 김구 선생이 품은 대한민국』, 2026.1.26.). 이러한 과정을 거쳐 김구 기념해 선정 소식은 일부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고, 본격적인 기념행사는 한 해 동안 다양하게 진행되었다.
 
‘김구 기념해’ 사업은 정부 차원에서도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정부는 4월 ‘김구 탄생 150주년 유네스코 기념해 추진 민관합동 TF’를 구성하고, 민관이 협력하는 범정부 차원의 기념 사업을 추진했다. 범정부 TF는 국가보훈부가 전담하고, 국무조정실‧문체부‧교육부‧외교부‧통일부‧행안부‧국가유산청 등 관계 부처를 비롯해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광복회,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등 유관 기관과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이를 바탕으로 한 해 동안 다양한 학술‧문화행사가 열렸다. 그중 백미는 부산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대한민국관이었다고 생각한다. 2026년 7월 20~29일 동안 총 13만 명의 관람객이 찾은 대한민국관 ‘김구 기념해’ 전시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은 김구와 자신을 함께 기념했다. 유네스코라는 국제무대가 열린 조국, 이곳을 찾은 세계인과 함께 대한민국의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 이를 바라보는 김구의 심정을 떠올려보게 하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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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대한민국관, ‘김구 기념해’ 전시공간
 

김구가 그린 세상, 그리고 우리나라
 
(나의 소원은) 첫째로 완전한 자주독립의 나라를 세우는 일이다. 둘째로 이 지구상의 인류가 진정한 평화와 복락을 누릴 수 있는 사상을 낳아, 그것을 먼저 우리나라에 실현하는 것이다. … 나는 오늘날의 인류의 문화가 불완전함을 안다. 이래 가지고는 전쟁이 끊일 날이 없어, 인류는 마침내 멸망하고 말 것이다. 인류 세계에는 새로운 생활 원리의 발견과 실천이 필요하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우리 민족의 사업은 결코 세계를 무력으로 정복하거나 경제력으로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 살고 인류 전체가 의좋게 즐겁게 살도록 하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 어느 민족도 일찍이 그러한 일을 한 이가 없으니 그것은 공상이라고 하지 마라. 일찍이 아무도 한 자가 없기에 우리가 하자는 것이다.
『백범일지』 「나의 소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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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이후 김구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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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원」이 실린 『백범일지』
 

백범 김구의 「나의 소원」은 김구 사상의 완결판이라 할 수 있다. 민중의식과 민족주의에서 출발한 김구의 독립운동은 단순히 일제의 지배에서 벗어나 나라를 되찾는 ‘복국(復國)’을 넘어 ‘민국(民國)’을 세우는 건국운동이기도 했다. 자유민권국가, 민주균등사회를 지향하고, ‘완전한 자주독립의 나라’를 세워 소위 약소 민족의 민족자결을 추구하는 것, 이를 구호가 아닌 역사로 증명하는 것이 김구의 목표였다. 
 
김구는 개인의 자유와 사회의 균등, 그리고 자주 국가들로 구성된 세계가 인류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 생각했다. 광복 이후에는 복국운동의 과정에서 정립된 ‘건국강령’을 시대적 상황에 맞게 다시 세우고자 했다. 그는 안으로는 부력(富力) 경쟁을 하지 않는 평화로운 사회, 밖으로는 자위할 수 있는 강력(强力: 군사력)을 충족한 국가를 지향했다. 정치와 경제 면에서 경쟁의 상대를 두지 않고 오로지 지력(智力)만을 경쟁하는 사회를 소망했다. 그리고 이렇게 창달한 ‘높은 문화의 힘’은 수천 년 역사로 누적된 소양, 독립을 통해 수렴된 평화사상에 기인하기를 ‘소원’했다. 
 
안타깝게도 그의 우려처럼 인류 평화는 여전히 불안정하며, 통일을 향한 노정은 험난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구가 그렸던 세상과 우리의 현재 모습을 함께 돌아본다. 그리고 다시 한번 ‘문화의 힘’으로 성장하고 평화의 가치를 실천하는 나라가 되기를 다짐하고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