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13일, 서울 바비엥2 교육센터 3층에서 재단 주최로 ‘제4회 한중 역사 고고학 분야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하였다. 이번 학술회의는 “공간의 확장과 네트워크의 형성”을 대주제로, 고대 동북아시아 사회가 다양한 교류와 접촉을 통해 발전해 온 역동적인 모습을 역사학과 고고학의 융합적 시각으로 새롭게 조명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올해로 제4회를 맞이한 이번 학술회의는 동북아를 둘러싼 국제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한국과 중국의 연구자들이 지속적으로 만나 최신 연구 성과를 공유하고 미래지향적인 학술 교류를 이어가기에 의미가 있다. 양국의 학자들이 학술적 이견을 좁히고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기에 그 자체로 학문적 지평을 넓히는 고무적인 현장이었다.
물질문화 네트워크의 규명
이번 학술회의는 개회식을 시작으로 고고학 분야를 다루는 제1세션과 역사학 분야를 다루는 제2세션, 그리고 종합토론 순으로 이어갔다. 첫 번째 발표자인 마카오대학 중춘후이(鍾春暉)는 중국 선사시대 이차장(二次葬) 현상을 정태적인 무덤양식으로 분류한 기존의 한계를 비판했다. 그는 초장부터 시신의 부패, 뼈 수습, 재장, 공동체의 재통합에 이르는 과정을 ‘시간, 공간, 신체/영혼, 의식, 집단과 개인’이라는 5차원적 분석틀로 재해석했다. 이를 통해 이차장이 사자의 신분 전환과 조상 공동체 구축에 관여하는 고도의 사회적 실천임을 논증했다. 재단의 박선미는 이러한 분석틀을 유라시아 대륙 전반에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아울러 막대한 노동력이 필요한 이차장을 선택해 집단적 조상화를 이루려 했던 구체적 동기와 단일 묘광 내 유골들의 세대적 미시 분석 기법의 발전 현황에 대해서도 질의하여 논의에 깊이를 더하였다.
두 번째 발표자인 홍콩침례대학 리젠션(李建深)은 동주 시기 동경(銅鏡)과 동종(銅鐘)의 생산 방식을 분석하여 당시 중국이 규격화된 부품인 모(模)를 조합하는 대량 생산체계와 정밀한 분업을 이미 갖추고 있었음을 논증했다. 그는 허난(河南) 신정(新鄭)과 후난(湖南) 창사(長沙)에서 발견된 유물을 근거로 근현대에 필적하는 공업 생산 능력을 증명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대전대학교 최호현은 안양 시기 완벽히 똑같은 완제품이 없다는 사실을 단순히 ‘공업적 효율성 의식 부재’로 단정 짓는 발표자의 시각을 경계했다. 나아가 신성한 예기(禮器)가 지닌 종교적 특수성과 쇄범주조법의 기술적 한계를 고려할 때, 이를 근대 자본주의적 공업과 구분하여 명명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세 번째 발표자인 경희대학교 이후석은 건창 동대장자(東大杖子) 유적을 중심으로 요서 토착문화와 전국시대 연(燕)의 물질문화가 복합된 ‘동대장자 유형’의 역사적 성격을 규명했다. 최고 수장묘인 45호묘에서 출토된 유물과 순장 풍습을 통해 당대 수장층의 막강한 권력과 광역 교류망을 입증하고, 요령식 동검과 신종 청동무기를 바탕으로 고조선과의 교류 관계를 추정했다. 이에 지린(吉林)대학 청징탕(成璟瑭)은 토착문화나 연 문화의 비중에 치우쳐 유형을 정의하는 방식에 유보적 입장을 표했다. 그는 안정적인 묘장 구조상 단경식 동검 문화권으로 보아야 한다고 지적하고, 문헌이 부족한 상황에서 개별 유물만으로 족속을 섣불리 단정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학술회의 참가자
지배체제와 다각적 교류의 조명
네 번째 발표자인 재단의 이유표는 주나라 소왕의 남정(南征)을 둘러싸고 형성된 역사적 기억의 변형 기제를 분석했다. 『춘추좌씨전』 등 후대 전래 문헌이 소왕의 귀환 실패를 ‘부덕으로 인한 정죄’의 서사로 구성한 반면, 당대 청동기 명문(銘文)은 이를 초형(楚荊) 정벌과 ‘금도석행(金道錫行)’ 확보 등 성공적인 국가 경영 치적으로 기록하고 있음을 대조하여 밝혔다. 이에 대해 중국사회과학원 양보(楊博)는 발표자의 새로운 관점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명문 역시 공적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기억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기공(紀功) 문체’와 ‘감계(鑑戒) 문체’ 차이로 방법론을 정교화할 것을 제안했다. 아울러 남정의 실질적 성과를 입증하기 위해 보다 직접적인 증거의 보완을 주문했다.
다섯 번째 발표자인 옌볜(延邊)대학 자오위란(趙宇然) 교수는 고대 동북아시아 정치체제와 기술 발전의 상관관계를 다루며, 4세기 이후 고구려가 중앙집권적 국가체제를 갖추었으나 통치 관련 기술 발달이 미비하여 중앙집권력이 약했다는 분석을 제시했다. 토론자인 경희대학교 이정빈은 중앙집권국가만을 고대국가의 전형이자 이상으로 간주하는 단선적 발전사관의 함정을 지적했다. 고구려는 전제적 중앙집권이 아닌 귀족 중심의 ‘중앙집권적 귀족국가’에 가까우며, 지배 세력 다수가 오히려 지방분권을 추구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나아가 중심부가 아닌 변경의 관점에서 중앙의 변화를 조명하는 다원적 역사상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마지막 발표자인 한국학중앙연구원 김진광은 효의황후와 순목황후 묘지명을 바탕으로 진릉(珍陵)을 문왕의 묘로 새롭게 비정하고, 묘지명에 기록된 장지와 실제 장지가 일치하지 않는 현상을 제도 미비 및 문왕의 ‘전륜성왕’ 존호와 연결하여 다각적으로 해석했다. 산시(陝西)사범대학 펑리쥔(馮立君)은 토론을 통해 장지 불일치 현상이 당의 묘지명에서도 다수 확인되는 ‘권장(權葬)’ 풍습과 매우 유사함을 지적하며, 당의 배장(陪葬)제도가 용두산고분군에 미친 영향을 비교‧분석할 것을 제안하였다. 또한 발해의 물질문화는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의 거시적 맥락에서 고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2세션 회의
교류와 연대를 향한 학술적 도약
종합토론 시간에 발표자와 토론자들은 각 세션에서 제기된 역사적‧고고학적 쟁점을 깊이 있게 논의하였으며, 객석의 연구자들과도 활발한 질의응답을 주고받았다. 고고학적 발굴 성과와 역사학적 문헌 해석이 교차하는 토론의 장은 역사적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가기 위한 치열한 학술적 교감의 장이었다. 이번 학술회의는 한‧중 양국 연구자들의 직접적인 교류가 소통 부재를 극복하고 나아가 상호 학술적 전통과 시각차를 이해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감하는 기회가 되었다. 올해로 제4회를 맞이하는 이 회의가 앞으로도 지속되어 양국 학계가 더 넓은 시야로 동북아시아 역사를 바라보며 연구의 토대를 다지는 지속 가능한 연대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