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와 일본 열도 사이에 놓인 바다는 한국에서 ‘동해(Donghae, East Sea)’, 일본에서 ‘니혼카이(Nihonkai, Sea of Japan)’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 문제는 단순한 표기의 차이를 넘어, 각 명칭에 담긴 역사적 경험과 문화적 기억, 장소에 대한 인식과 정체성이 충돌하는 지명 분쟁이다. 이 책은 한쪽 이름을 다른 이름으로 대체하는 방식보다 서로 다른 이름에 담긴 문화와 정체성을 인정하고 두 명칭을 함께 사용하는 ‘이중 명명(dual naming)’이 현실적이고 평화적인 해결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The Name East Sea as Culture and Identity』
8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동해-일본해 명칭 문제를 역사, 지도학, 국제기구, 교육, 언론, 디지털 기술의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살펴본다. 제1장은 이 바다에 두 이름이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출발해, 이 명칭 문제가 단순한 표기 차이가 아니라 역사와 문화, 정체성이 충돌하는 지명 분쟁임을 설명한다. 동해-일본해 이슈가 양국만의 외교 현안이 아니라 국제사회가 함께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할 문제임을 강조한다.
제2장은 고대 기록, 조선시대 문헌과 서양 및 일본의 고지도를 검토하며 ‘동해’라는 명칭의 역사적 사용과 의미를 살펴본다. 동시에 조선해, 북해, 일본해 등 일본 내부와 국제 지도에서 사용된 여러 명칭을 분석하여, 동해와 일본해의 명칭이 역사적․정치적 상황 속에서 변화해 왔음을 보여주고, 동해가 한국인의 문화유산과 집단기억을 담은 이름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일본이 발간한 관찬 지도로, 왼쪽은 동해 수역에 조선해, 일본 동쪽 태평양 수역에 대일본해를 표기했고,
오른쪽은 한반도 쪽 수역에 조선해, 일본 쪽 수역에 일본해를 적었다.
출처: 高橋景保, 1810, 新訂萬國全圖; 鈴木茂行, 1894, 日淸韓三國全圖
제3장은 한국이 제안해 온 동해와 일본해 병기 사용의 타당성과 실질적 이점을 논증한다. 두 이름을 함께 사용하는 것은 어느 한쪽의 명칭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각 명칭에 담긴 문화와 정체성을 존중하고 국제사회의 지도 이용자에게 균형 잡힌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사회적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구글이 “복수 명칭을 가진 장소를 지지한다”는 제목으로
유엔지명전문가그룹에서 발표한 자료에서 인용한 동해 수역의 표기
출처: United Nations Group of Experts on Geographical Names (UNGEGN), 2023, Third Session presentation materials
제4장은 1992년 유엔지명표준화회의에서 한국이 동해 명칭 문제를 처음 공식적으로 제기한 이후, 유엔지명전문가그룹과 국제수로기구에서 이루어진 논의와 그 성과를 정리한다. 특히 국제기구가 지명 분쟁을 논의하는 장을 제공해 왔다는 점과 국제수로기구가 2020년 해역의 문자 명칭을 대신할 고유 숫자 식별자 체계를 채택한 과정을 소개함으로써 대립을 넘어 기술적‧제도적으로 해결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다.
동해 수역 명칭 이슈에 대한 유엔지명회의에서의 최초 기록
출처: United Nations Group of Experts on Geographical Names (UNGEGN) website
(https://unstats.un.org/unsd/geoinfo/UNGEGN/docs/6th-uncsgndocs/6-uncsgn-rpt-en.pdf)
제5장은 각국의 정부와 지명기구, 교육기관, 지도 제작자와 출판사, 언론이 동해-일본해 명칭을 어떻게 사용하고 변화시켜 왔는지를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살펴본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을 비롯한 지도 출판사의 병기 사례, 미국의 교육 관련 정책, CNN, BBC, WP 등의 보도 방식을 분석하면서, 이들 미디어가 대중에게 균형 잡힌 지명 정보를 제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
왼쪽은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채택한 동해 표기 의무 조항,
오른쪽은 오스트리아 지명위원회의 병기 제안에 포함된 동해 수역을 보여준다.
출처: Virginia Legislative Information System; Arbeitsgemeinschaft für Kartographische Ortsnamenkunde
(AKO, Austrian Board on Geographical Names)
제6장은 동해-일본해 병기를 사회적 정의, 평화, 인권, 문화유산, 교육적 가치와 같은 보편적 가치의 관점에서 해석한다. 지명은 특정 공동체의 기억과 정체성을 담고 있으므로, 서로 다른 이름을 함께 인정하는 것은 한쪽의 희생 없이 관련 당사자들의 권리와 이익을 공정하게 존중하고, 지명 분쟁을 국제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로 확장하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동해 병기 이슈를 다루기 위해 미국 고등학교 AP Human Geography 교사가 제작한 교육 자료
출처: Joseph P. Stoltman
제7장은 온라인 지도와 디지털 지리정보, 구글 지도, 사용자 생성 지도 제작과 자발적 지리정보(VGI)가 지명 분쟁 해결에 기여할 가능성을 탐색한다. 디지털 지도는 이용자의 위치와 언어, 화면 배율 등에 따라 여러 명칭을 유연하게 표시할 수 있으므로, 동해와 일본해를 함께 제공하고 이용자의 알 권리와 정보 접근성을 높이는 새로운 환경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제8장은 이 이슈의 해결을 위해 한국과 일본의 정부, 학자, 언론인, 전문가, 교육기관, 국제기구 및 일반 이용자 사이에 장기적인 대화와 협력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이 문제를 민족주의적 대립이 아니라 상호 이익과 평화, 지속가능한 지명 사용의 관점에서 다루어야 하며, 디지털 기술과 균형 잡힌 교육,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를 바탕으로 현재와 미래 세대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의 출간에서 다음 두 가지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첫째, 동해-일본해 명칭 이슈를 학술적 관점으로 정리해 국제사회의 독자와 연구자, 교육자, 지도 제작자에게 제공했다는 점이다. 둘째, 동해 명칭 문제를 한일 양국의 대립을 넘어 국제적 지명 거버넌스와 사회적 정의, 평화적 분쟁 해결의 사례로 최대한 중립적인 입장에서 서술했다는 점이다.
특히 이 책은 지난 30여 년간 이루어진 유엔과 국제수로기구의 논의, 지도와 교과서, 언론과 디지털 플랫폼의 변화를 한 흐름 속에서 살펴본다. 그 결과 독자는 동해-일본해 문제를 과거의 역사 논쟁이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국제적 의사소통과 정보 제공의 문제로 이해할 수 있다.
동해-일본해 명칭 문제를 둘러싼 논의가 지속될 때, 이 책이 제시하는 병기의 필요성과 혜택의 논리, 그리고 실천 방법으로 제안된 대화, 교육, 디지털 기술 활용 등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유용한 자료로 활용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