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재단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로고 동북아역사재단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로고

영산강 복암리 고성은 비류백제 의려왕(백제 고이왕)의 도성
  • 조회수 19
■ 비류백제 의려왕(백제 고이왕)의 도성은 영산강 복암리 고성 1) AD 4세기 초에 건축된 영산강 복암리 고성은 10M 넓이의 판축 토성으로, 흙 사이에 나뭇잎이나 나뭇가지를 깔아 흙을 다지는 부엽판축 공법의 고성이며 지름 1M의 기둥 초석이 발견된 왕성급 고성이 복암리 고성 (복암리 부엽공법은 부여 도성과 동일한 축성 공법이고 복암리 지름 1M의 초석은 익산 왕궁리의 초석과 같은 크기의 초석) 2) 영산강 복암리 4세기 초 ~ 5세기 말의 대형옹관묘는 비류백제 영산강 시대의 비류백제 왕릉 3) 영산강 지역에 6세기 초 ~ 7세기 초에 아치형 전축(벽돌) 고분은 사비 시대의 백제 왕릉 (♥일제시대 식민사학자들이 도굴하고 파괴했음♥) ■ 북부여 영토(장단경 아사달)에서 시작된 아치형(궁륭식) 전축(벽돌) 고분은 부여계통의 왕릉 (1) 아치형 전축(벽돌) 고분은 한나라 방식 묘제가 아니라 부여 계통 왕릉 묘제 낙양에서 BC 1세기말에 '단층 아치' 묘제가 시작되었다고 아치형 전축(벽돌) 고분이 한나라 묘제라고 하지만, 부여 지역(장단경 아사달)인 하북성 역현 지역에서 BC 3세기 후반에 완성형의 '이중 돔 아치' 왕릉이 조성되었기에 부여계통이다 장안에서 사용하는 화전옥이나 남전옥이 아닌 요령성의 수암옥으로 하북성과 서주시의 금루옥의/은루옥의를 만들었으니 한나라가 만든 것아 아니라 부여에서 만든 옥의이기에 아치형 전축고분은 부여계통의 왕릉이다 (2) 부여 계통의 아치형 전축(벽돌) 고분의 특징 용·봉황·연꽃 무늬 벽돌로 벽면을 장식한 독특한 '이중 아치'와 둥근 '돔형 천장' 구조 (공주 무령왕릉 아치형 전축 고분 방식) (3) 부여 계통의 아치형 전축(벽돌) 고분의 전파경로 ○ 아치형(궁륭식) 고분 전파 경로1 (비류백제를 통한 전파 경로) 역현(BC 3세기 후반, 전축아치)->정주시(BC 1세기 중반,전축 아치)->하간시(BC 1세기 말,전축 아치) ->기주시(AD 1세기 초,전축 아치)-> 무읍(AD 1세기 중반, 전축 아치)->황화시(AD 2세기 말,전축 아치) ->영산강(4세기,석축 아치)-> 큐슈(AD 5세기,석축 아치)->혼슈(AD 6세기,석축 아치) ○ 아치형(궁륭식) 고분 전파 경로2 (온조백제를 통한 전파 경로) 역현(BC 3세기 후반, 전축아치)->정주시(BC 1세기 중반,전축 아치)->하간시(BC 1세기 말,전축 아치) ->융요/거록(AD 1세기 초,전축 아치)-> 서주시(AD 1세기 중반, 전축 아치)->남경(AD 3세기,전축 아치) -> 공주 곤지릉(6호분, 무령왕의 부친릉)/무릉왕릉(비류계, AD 6세기,전축 아치) ■ [사료,지리,고고학 검증] 백제 한성(漢城, 하남위례성)은 한반도 서울일까? --- [ 구글 Ai의 도움을 받아서 완성한 글입니다 ]--- ※주) 입체 사료학: 사료(사서,문헌) 해석을 중심(근간)으로 고대 지리학, 고고학, 서지학을 참조/고려하는 사료학(사료 해석학) 【 사마천-사기, 한서. 후한서 】BC 128년 예=동예=예맥의 임금 남여가 한나라에 항복해서 "한무제가 연나라(하북성)과 제나라(산동성) 사이에 설치한 '창해군'은 예=동예=예맥의 영토에 설치되었으며, 위만조선 멸망시키려고 창해군에서 위만조선간 도로 건설로 인해 연나라와 제나라 사이의 창해군 지역이 소란스러워졌는데, 이는 현재의 하북성 창주시 지역에 해당된다 '후한서 동이열전' 예濊 에 하북성 창주시에 있는 예의 서쪽에 낙랑군이 있다(濊 西至樂浪)고 했으니 하북성 중부에 낙랑군이 있어야 되기에 한반도 북한 평양은 낙랑군이 될 수 없다 (낙랑군의 위치는 하북성 중부 형수시衡水市 북부일 수 밖에 없다) ☞ [논쟁 쟁점 ] 역사학계의 '백제 한성(漢城, 하남위례성)은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 ♥[ 내용 ] 백제 '한성=하남 위례성'이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이병도/신석호 주장) (1) 삼국사기 지리지의 '고구려 평양성은 본래 한나라 낙랑군(平壤城, 漢樂浪郡也)'의 내용과 1920년대 평양 인근 고분에서 일제 식민사학들이 발굴한 '낙랑' 명문 봉니,'낙랑태수 장량' 명문 등을 근거로 낙랑군 위치를 한반도 평양으로 확정했다 (2) 낙랑군 남쪽의 대방군을 황해도와 서울 한강 북쪽으로 주장하고 낙랑군,대방군 남쪽인 백제 한성(漢城, 하남 위례성)을 서울 한강 남쪽에 있다고 주장했다 (3) 삼국사기 지리지의 '신라 한산주(漢山州)는 본래 백제의 한성(漢城)' 이니, 신라 한산주는 고려·조선의 광주(廣州)이므로, 백제 한성(漢城)은 '송파'나 '하남'에 있을 수 밖에 없다 (4) 1925년 대홍수로 인해 풍납토성에서 청동 초두(왕실 제기) 등 귀중한 유물이 발견되었으니 서울 송파구 풍남토성을 백제 한성(漢城, 하남위례성)으로 결정했다 >>> 주장의 핵심 근거 >>> 서울 송파구 풍남토성을 백제 한성(漢城, 하남위례성) 으로 결정한 핵심 근거 낙랑군은 북한 평양이고, 대방군은 항해도와 한강 북쪽이니 낙랑군/대방군 남쪽의 서울 송파구 풍남토성이 백제 한성(漢城, 하남위례성)이 될 수 밖에 없다 ♥ [ 반론 ] 백제 한성(漢城, 하남위례성)이 서울 송파구 풍남토성이 될 수 없는 내용 (1) 근초고왕이 AD 371년 하남 위례성에서 한성(漢成)으로 도성(서울)을 옮겼기에 하남위례성과 한성(漢城)은 같은 장소가 아니라 다른 지역이다( 삼국사기:近肖古王 二十六年 移都漢山.) (2) 삼국사기에 낙랑군 서쪽에 백제 위례성이 있으니((溫祚王 十三年 夏五月, 王謂臣下曰, “國家東有樂浪".) 낙랑군은 한반도 북한 평양이 될 수 없다 (낙랑군이 북한 평양이라면 백제 위례성은 서해바다가 된다) (3) 삼국사기의 '고구려 평양성은 본래 한나라 낙랑군(平壤城, 漢樂浪郡也)'내용 반박이다 해당 내용의 근거는 후한서 동옥저의 장회태자 주석 '동옥저 서부지역에 왕험성(王險城)이 있다'는 내용이다 위만조선의 도성(서울) 왕험성(王險城) 은 위만조선이 멸망하고 낙랑군이 되었다 고구려 평양성은 동옥저 서부 지역에 있기에 낙랑군은 북한 평양이 될 수 없다 (東沃沮 在高句驪 蓋馬大山之東. 其山在今平壤城西. 平壤卽王險城也.) (4) 고고학 발굴 내용은 최신 상황이 반영되어야 한다 1990~92년에 평양 부근 3000여기의 고분을 발굴 조사 했는데, 한나라 낙랑군 유물이 하나도 출토되지 않았으니 유물 조작이 확인된 1920년대의 일제 식민사학자의 발굴 내용을 근거로 한 낙랑군 평양설은 폐기되어야 한다 (5) 낙랑군이 평양이라면 낙랑군 서쪽의 하북 위례성은 평양 인근의 서해 바다나 해안가가 된다 하북위레성 남쪽의 강건너에 하남위례성이 있으니(삼국사기 온조왕 내용) 하남 위례성 위치는 황해남도 북부 안악군(安岳郡)이 될 수 밖에 없으니 하남위례성인 백제 한성(韓城)은 송파구 풍납토성이 될 수 없다 (6) 백제 한성이 송파나 광주라는 삼국사기 지리지 내용은 삼국시대의 정확한 위치를 설명한 것이 아니다 삼국사기 지리지 내용은 김부식 등 고려 중기 학자들의 지리 인식 내용이기에 반드시 비판적으로 검토를 해서 지리를 비정해야 한다(무조건 확신은 논리학의 전제의 오류로 궤변이다) 한백겸 정약용등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주장인 고려/조서 시대 건축된 기자사당과 온조사당을 근거로 한 '북한 평양 기자조선설'과 '천안시 직산 위례성설'은 즉시 폐기되어야 한다
파일
  • 파일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