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한 병합후 온조왕이 월지국으로 천도(도성 이동)
1)【 사마천-사기, 한서. 후한서 】BC 128년 예=동예=예맥의 임금 남여가
한나라에 항복해서 "한무제가 연나라(하북성)과 제나라(산동성) 사이에 설치한 '창해군'은
예=동예=예맥의 영토에 설치되었으며, 위만조선 멸망시키려고 창해군에서 위만조선간 도로 건설로 인해
연나라와 제나라 사이의 창해군 지역이 소란스러워졌는데, 이는 현재의 하북성 창주시 지역에 해당된다
'후한서 동이열전' 예濊 에
하북성 창주시에 있는 예의 서쪽에 낙랑군이 있다(濊 西至樂浪)고 했으니
하북성 중부에 낙랑군이 있어야 되기에 한반도 북한 평양은 낙랑군이 될 수 없고
낙랑군의 위치는 하북성 중부 형수시衡水市 북부일 수 밖에 없다
낙랑군 위치가 하북성 중부 형수시라면
낙랑군 남쪽의 삼한은 하북성 남부, 산동성 , 안휘성, 강소성일 수 밖에 없다
2) 삼국사기 백제 본기에
온조왕이 AD 8년에 마한을 병합하였지만 월지국으로 천도한 기록은 없다
마한 병합전에는 26년 동안 2년에 한번꼴로 말갈 또는 낙랑군이 등장했는데
(북쪽의 말갈이 7번 침입하였고, 동쪽의 낙랑군이 6번 기록되어 있다)
마한 병합후에는 20년 동안 낙랑군은 등장하지 않고, 말갈은 14년 후에 2번 침입했다
따라서
위례성 부근의 말갈과 낙랑이 마한 병합후에 거의 사라진 것은(20년 동안 말갈만 2번 등장)
마한 병합후에 마한의 도읍인 월지국(목지국)으로 온조왕이 도성을 옮겼기 때문이다
※주) [삼국지 위서 동이전] 대방군(형수시) 남쪽에 삼한이 있습니다(韓在帶方之南)
월지국(목지국)의 위치는 강소성 서북부의 서주시(徐州市) 고루구鼓樓區)로
하천(정만하丁萬河,서운신하徐雲新河,황하고도廢黃河)의 반달형(月支國의 月) 지형이 있다
♣ 후한서, 삼국지, 진서에 AD 8년에 없어진 마한이 등장하는 까닭은
마한의 도성인 월지국(목지국)으로 백제(십제)가 도성을 옮겼기 때문이다
3) 서주시(徐州市)에 1~4세기 조성된 8개의 왕릉은 부여 계통의 아치형(궁륭식) 전축 고분
부여 계통의 아치형(궁륭식) 전축(벽돌) 고분에 대하여
-. 특징 : 용·봉황·연꽃 무늬 벽돌로 벽면을 장식한 독특한 '이중 아치'와 둥근 '돔형 천장' 구조
-. 부여계통 아치형 전축 고분 전파 경로 : (발생지는 북부여 왕릉) 역현(천자 금루옥의 북부여 해모수릉)
-> 졸본부여:정주시(천자 금루옥의 졸본부여릉,제후 은루옥의 주몽릉)
-> 소서노 여왕국:하간시(천자 금루옥의 소서노릉) -> 비류백제 미추홀:형수 기주시,천자 금루옥의 비류릉)
-> 온조백제 : 서주시(제후 은루옥의 온조릉) --> 온조백제 : 남경(근초고왕릉, 근구수왕릉)
-. 서주시(徐州市)의 1~4세기 아치형 전축 고분은 백제 왕릉(추정) :
토산(土山) 한묘군 총 3기(서주시 운룡구) 중에 1호분 (AD 28년경)은 온조왕 왕릉(제후급의 은루옥의 출토)
랍산(拉山) 한묘 1기(서주시 매왕구), 한왕(漢王) 전축대묘 1기(서주시 동산구 한왕진)
연화산 한묘 및 대묘 2~3기(서주시 경제기술개발구 대황산가도 일대)
■ 백제 초기 하북 위례성, 하남 위례성 위치
(낙랑군의 위치가 하북성 중부 형수시 지역이면,
낙랑군 서쪽에 있는 위례성과 요서군은 석가장시 부근이어야 한다)
1) 삼국사기 백제 본기에서
한나라 산(한산) 부아악에 올라 도읍지를 물색했고,
강 남쪽에 북으로 한수가 띠 처럼 두러 쌓인 위례성에 십제를 건국했다
한나라 강(한수)이 북으로 띠(帶)처럼 둘러 쌓였으니
낙랑군 남쪽의 대수( 帶水)다 대수 남쪽에 하북 위례성이 있다(惟此河南之地, 北帶漢水)
2) 삼국사기 백제 본기에서
온조왕이 마수산에 마수성을 쌓고, 부아악에 항아리 모양의 울타리 병산책을 만들었고
(溫祚王 八年 秋七月, 築馬首城, 竪瓶山柵.)
하북위례성 동쪽에 낙랑군이 있다고 했다(溫祚王 十三年 夏五月, 王謂臣下曰, “國家東有樂浪".)
하북 위례성은 낙랑군 서쪽에 있고, 한서지리지 요서군 유성현 서남쪽의 마수산 부근에 있다
(한서 지리지 遼西郡 栁城, 馬首山在西南. )
3) 삼국사기 백제본기에서
온조왕이 하북 위례성 남쪽의 한나라 강을 건너 하남 위례성으로 도읍을 옮겼다
(溫祚王 十三年 夏五月, 王謂臣下曰, “予昨出巡, 觀漢水之南, 圡壤膏腴, 冝都於彼, 以圖久安之計.”)
※주) 하남 위례성 천도 2개월 후에 한성(漢城) 백성들을 나누어 하북 위례성으로 옮겼기에
한성(漢城)은 고유명사인 한성(漢城)이 아니라 '일반 명사인 한나라 영토의 성'으로 하남위례성이다
4) 따라서
예=동예=예맥에 설치된 연나라(하북성)과 제나라(산동성) 사이의 창해군(창주시) 서쪽에 낙랑군이 있다
낙랑군 서쪽의 요서군 남부에 하북 위례성 있으니
하북 위례성의 위치는 석가장시 남쪽으로 말머리 모양의 마수산이 있는 형대시 융요현(隆堯縣) 부근이다
하북 위례성 남쪽의 큰강을 건너서 하남 위례성이 있으니
하남 위례성의 위치는 융요현 남동쪽의 춘추시대 황하인 부양하 남쪽으로 형대시 거록현(巨鹿縣) 부근이다
■ 비류백제 의려왕(백제 고이왕)의 도성은 영산강 복암리 고성
1) AD 4세기 초에 건축된 영산강 복암리 고성은
10M 넓이의 판축 토성으로, 흙 사이에 나뭇잎이나 나뭇가지를 깔아 흙을 다지는 부엽판축 공법의 고성이며
지름 1M의 왕궁 기둥 초석이 발견된 왕성급 고성이 복암리 고성
(복암리 부엽공법은 부여 도성과 동일한 축성 공법이고
복암리 지름 1M의 초석은 익산 왕궁리의 초석과 같은 크기의 초석)
2) 영산강 복암리 4세기 초 ~ 5세기 말의
대형옹관묘는 비류백제 영산강 시대의 비류백제 왕릉
3) 영산강 지역에 6세기 초 ~ 7세기 초에
아치형 전축(벽돌) 고분은 사비 시대의 백제 왕릉
(♥일제시대 식민사학자들이 도굴하고 파괴했음♥)